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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야기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작가소개, 작품설명, 개인적 생각

by 장준규 2023.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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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와이프가 사랑하는 또 다른 화가 르누아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일평생 행복을 그린 화가다. 그에게 행복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삶의 고통을 행복이란 이름으로 이겨낸 위대한 그의 삶은 그림을 통해 깊은 울림을 준다.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은 일찍 포기한 내겐 질책과 희망의 아이콘이다.

작가소개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1841년 프랑스 리모주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재봉사의 아들인 그는 13살 때부터 도자기 공방에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했다. 그 돈으로 그림수업을 받거나 전시를 관람하는 데 사용하였다고 한다. 1862년 글레이르의 아틀리에에 들어가 모네, 바지유, 시슬레, 등과 친해져 이후 인상파운동을 함께 이끌어간다. 르누아르는 세 가지 화풍의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첫째는 초창기의 앵그르, 쿠르베, 들라크루아의 영향을 받은 고전주의 화풍으로 그린 작품이 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1876년 발표한 <물랭 드 라 갈레트>와 같은 따뜻한 느낌의 인상파 화풍이다. 여유가 생기고 이탈리아 여행 중 라파엘로의 작품의 영향을 받아 기존 느낌에 고전주의 화풍이 가미되어 라인이 선명해지고 형태가 뚜렷해진 1881년 <우산>과 같은 작품이 있다. 아내인 알린 샤리고(Aline Charigot)와의 결혼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세명의 아들을 두었다. 첫째는 배우가 둘째 장 르누아르 프랑스의 유명한 영화감독이 된다. 그리고 셋째도 영화계 일을 했다고 한다. 1904년 르누아르는 루마티스 관절염이 악화되어 손가락을 쓰지 못해 하인들이 손에 붓을 천으로 매어주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르누아르의 말년이 나오는 영화에 보면 밤마다 그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에 가족들이 잠을 못 이뤘다고 한다. 1915년 아내 알린이 사망하고 3년간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1919년 79세의 나이로 죽음에 이른다.

작품설명

1868년 소년과 고양이

초기작으로 고전주의 느낌의 작품이다.

1876년 물랭 드 라 갈레트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대표적인 인상파 그림이다. 몽마르뜨 언덕 풍차 근처 작은 정원에서 열린 무도회를 그린 것으로 당시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작업실도 근처로 옮겼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나무사이로 비친 햇빛이 인물들의 옷에 알록달록 비친 것을 볼 수 있다.

1877년 배우 잔느 사마리의 초상

액스트라 배우를 모델로 그린 초상화다. 당시 배우보다 그림으로 더 알려졌다고 한다.

1981년 우산

이탈리아 여행 후 라파엘로의 그림을 보고 영향을 받기 시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라인이 선명해지고 형태가 정확해진다. 또한 이 그림의 특징은 빛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그림들과 다르게 흐릿한 색감은 그의 실험정신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1881년 선상 파티의 오찬

제일 왼쪽 여인이 배우자 알린이다. 그리고 나머진 동료 화가들과 모델들을 그렸다. 이 그림에 6개월 이상 공들였다고 한다.

1981년 테라스 위의 두 자매

르누아르는 아이들과 여성을 많이 그렸는데 볼은 항상 통통하고 발그레 한 모습으로 그렸다. 그리고 모자를 좋아했다고 한다. 영화 중 대사에 그의 모델이 자신은 아이들처럼 밖에 못 그린다고 하자 "나는 아이들처럼 그리고 싶었다."라고 한 것이 기억난다.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을 여성의 모습에도 반영하는 것 같다.

1992년 피아노치는 소녀들
1910년 르누아르부인과 강아지

아내 알린이 죽기 전 그림이다. 1915년 알린이 죽고 이 그림을 보며 3년간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1918-1919년 목욕하는 여인들

목욕하는 여인들은 르누아르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젊은 시절보다 선명한 색채와 원근감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1919년 풍경

이 그림을 그리고 바로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듯 완성한 그림의 붓터치를 보면 이 이야기도 신빙성이 있다.

개인적 생각

고등학교 시절 처음 수채화를 배울 때 검은색 물감을 쓰지 말라고 배웠는데 그게 르누아르의 말이었을 줄이야. 르누아르의 그림들을 보면 화사한 색감과 인물들의 활기차고 생기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햇살 맛집이랄까? 영화 '르누라르'를 보면 그의 말년의 모습이 잘 보인다. 알린이 죽고 4년 후 르누아르도 죽는다. 3년간 알린의 초상화를 보며 붓을 놓았는데... 죽기 전 1년 간의 이야기를 그린 듯하다. 영화에 보면 휠체어를 타고 한 손에는 붓이나 연필을 천으로 둘러 고정하고 그림을 그린다. 류머티즘 관절염이 그 시대에는 약이 없었다고 하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전쟁으로 첫째 아들은 한쪽 팔을 잃고 둘째 아들은 다리를 잘라야 했을 정도의 부상을 입었지만 알린의 간병으로 자르지 않고 절게 되었다고 한다. 알린마저 죽고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죽고 싶었을 것이다. 영화 속 르누아르는 밤마다 고통의 비명을 지른다. 아파 본 사람은 밤이 얼마나 길고 고통스러운지 알 것이다. 붓놀림이 내 맘대로 안될 때는 짜증과 고통이 함께 치밀어 오를 것이다. 욥이 그릇을 깨어 피부를 긁었듯 염증 가득한 통증의 부위를 도려내고 싶지 않았을까? 이 모든 고통을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잊으려 한 것일까? 평생 5000여 점의 그림을 그린 그는 이 시기에 무려 800점을 그렸다고 한다. 답은 마티스에게 한 그의 대답에 있을 것이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예술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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