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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야기

<구스타프 클림트> 작가소개, 작품소개, 개인적 생각

by 장준규 2023.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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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미대에 입학하고 꼭 맞이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책을 파는 사람이다. 미대 옆에 와서 미술서적과 해부학 책을 파는 것이다. 그 당시 인쇄기술이 좋지 않아 좋은 미술서적을 고르는 방법 중 하나가 크림트의 그림이었다. 이유인즉슨 황금색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인쇄되었는지가 기준이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삶과 작품을 살펴보자.

 

작가소개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오스트리아 수도 빈 근교의 바움가르텐에서 일곱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금세공사이자 판화가였으며 그리 성공하지는 못해 가난한 편이었다. 1876년 14세에 비엔나의 빈 응용미술학교에서 회화와 수공예적인 장식 교육을 받았다. 졸업 후 동생 에른스트(Ernst)와 친구인 프란츠 마치(FranzMatsch)와 함께 공방을 차려 주로 벽화를 그리는 일을 했다. 1880년대 말 젊은 나이에 국립극장과 미술사박물관에 장식화를 그려 건축 장식미술의 대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1892년 아버지와 동생 에른스트의 죽음으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다. 가족의 죽음으로 3년 동안 활동을 접는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 1895년 다시 작품을 내놓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작품들을 하게 된다. 1897년 빈미술 단체의 일원이었던 클림트는 보수적 미술관에 반감을 가지고 단체에서 나와 ‘빈 분리파’를 결성하고 초대회장이 된다. 그들만의 공간에서 전시하고 '빈분리파'는 회화뿐 아니라 조각, 건축, 음악, 다지인, 공예 등 다양한 분야의 종합예술을 다루며 비판과 함께 찬사를 받으며 유명해진다. 에곤쉴레(EgonSchiele), 오스카 코코슈카(OskarKokoschka)와 같은 신진 작가를 후원하기도 한다. 1905년 ‘빈 분리파’를 탈퇴하고 크림트의 황금시대를 연다. 1918년1918년 1월 11일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진 뒤 그 해 2월 6일 스페인 독감이 폐렴으로 발전해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작품소개

 

1889년 구 국립극장의 관객석 벽화

1988년 철거를 앞둔 국립극장의 실내 풍경화를 수주받는다. 관중석의 150여 명의 인사들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초상화처럼 그려 사교계에서 유명해진다. 1890년 황제로부터 황금공로십자훈장을 받고 명성을 알리게 된다.

1891년 빈 미술사 박물관 벽화 일부

크림트가 동료들과 함께 한 벽화그림의 일부로 젊은 날의 사실적인 화풍을 볼 수 있다.

1895년 사랑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 이후 3년의 공백기 뒤에 나온 작품이다.사랑에 대한 고뇌가 보인다. 풀 숲에 숨어 사랑을 나누는 연인과 그림 위의 여러 얼굴이 영혼의 형태로 보이는데 가족의 죽음 후 사랑에 대한 감정과 슬픔이 혼재한 자신의 혼란스러움을 표현한 듯하다. 그리고 숨기고 싶은 마음까지 담지 않았을까? 이렇듯 그림 속에 자신의 철학을 담기 시작한다.

1899-1907년 법학, 철학, 의학 AI로 복구

1894년 오스트리아 교육부로부터 법학, 철학, 의학을 주제로 빈대학의 천장화를 의뢰 받는다. 각 주제의 상징과 예찬을 반란 교육부와 달리 주제들의 비판적인 시각으로 스케치를 그려 보여준다. 교수들의 반대로 갤러리에 전시된다. 논란과 비판이 심해지자 클림트는 후원자의 도움으로 계약금을 돌려주고 작품들을 회수한다. 하지만 나치의 폭격으로 원본은 소실된다. 스케치만 남아 현재는 AI로 복구한 작품을 볼 수 있다.

1902년 금붕어

빈대학 천장화 스케치를 반대한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한 조롱의 답화이다. 엉덩이를 보이는 것은 그 당시에도 조롱의 의미로 쓰였나 보다. 여인의 표정을 보면 깔보듯이 웃고 있다.

1901년 유디트

유디트는 여성으로써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해 목을 자르는 영웅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논개와 같은 인물이다. 다른 화가들이 여성이면서 용기로 적장의 목을 자르는 영웅과 같은 모습을 다뤘다면 클림트는 팜므파탈의 모습을 매혹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1902년 베토벤 프리즈

14회 분리파 전시에 벽화로 제작된 벽화 작품이다.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 제4악장 '환희의 송가'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

전시장의 가운데 베토벤의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고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벽을 따라가면서 전시를 관람하는 스토리텔링 형식의 전시다. 교향곡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해 인류가 행복을 찾아가며 역경을 이기고 낙원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4악장 '환희의 송가' 원제는 '자유의 송가'였다고 한다. 빈분리파가 원하던 예술의 자유를 염원하며 제작한 최초의 콜라보 작품이 아닐까?

1907년 다나에

그리스 신화 속 아르고스왕이 자신의 딸이 낳은 아들의 손에 자신이 죽는다는 신탁을 받는다. 이에 딸을 외딴섬 탑 속에 가두는데 제우스가 다네에를 발견하고 황금 빗물로 변해 다시 사이로 스며들어 관계를 가진다. 이후 페르세우스가 태어나고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를 죽인다.

1907년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영화 '우먼 인 골드'를 보면 그림에 대한 스토리가 잘 나온다. 부유한 유대인 사업가의 의뢰로 그의 아내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를 그린 그림이다. 클림트와의 염문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림은 나치에게 압수되었다가 전쟁이 끝나고 오스트리아 정부 소유로 넘어간다. 블로흐바우어가의 상속자인 조카의 긴 소송 끝에 승소하여 돌려받는다.

1907-1908년 키스

설명이 필요할까? 남녀의 손끝과 발끝을 보면 남녀가 얼마나 격정적인지를 알 수 있다. 이 여성이 누구인지 말이 많지만 죽음의 순간에도 찾았던 에밀리로 추측된다. 에밀리와 헤어졌다가 이 그림을 보고 다시 찾아와 재결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1910-1915년 죽음과 삶

환경운동가들이 미술관에서 페인트를 뿌리고 간 작품이다. 인간의 삶을 죽음이 바라보고 있자. 당시 1908년 대지진, 1910년 헬리혜성,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등 여러 흉조들로 유럽은 세기말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환경운동가들도 이 그림을 타깃으로 잡지 않았을까? 그리고 1918년 뇌출혈에 이은 스페인 독감 그리고 폐렴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개인적 생각

구스타프 클림트의 여인들에 많은 스토리가 있지만 그 부분은 빼고 이야기하겠다. 크게 보면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는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크림트의 생각이다. <희망>, <여성의 세시기>, <죽음과 삶> 등 인생을 이야기할 때면 클림트는 항상 죽음을 등장시킨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듯이 존재에는 죽음이 항상 기다리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두 번째는 여성이다. 많은 여성들과의 관계로 이야기들이 많지만 본질은 그들 모두가 크림트에게는 모티브였다는 것이다. 생명과 죽음 사이에 있는 삶에서 인간의 존재 이유는 사랑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것을 클림트는 여성에게서 찾았고 끊임없이 갈구한 것이다. 클림트는 여성과의 열정적인 관계 속에서 수많은 관찰을 했다. 본인이 여성으로부터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그 시점을 담아낸 것이다. 클림트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보면 성관계 후 침대 위의 나른함들이 느껴진다. 여성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은 하나도 없다. 약간 아래에서 눈을 맞추고 있거나 목을 꺾고 음미하듯 눈을 감고 있다. <키스> 그림을 보면 남녀가 입을 맞추고 있지 않다. 하지만 두 사람의 손과 발을 보면 얼마나 쾌감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헤어진 에밀리가 그림을 보고 다시 사랑에 불타오를 정도로 열정적인 그림이다. 클림트는 인생의 이유를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찾았고 죽음이 오기 전에 최선을 다해 그것을 남기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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