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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야기

<마르크 샤갈> 작가소개, 작품설명, 개인적 생각

by 장준규 2023.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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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과 벨라

2011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샤갈전을 관람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의 삶과 추억 사랑에 대한 이야기와 그리고 나의 사랑도 샤갈처럼 아름답게 그릴 수 있기를 기도하며 전시를 봤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와이프에게도 그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열심히 설명했던...

작가소개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은 1887년 러시아의 비테프스크에서 유대인 가정의 아홉 자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생선가게에서 일하고 어머니는 작은 잡화상을 하며 가족들을 돌보았다. 비테프스크는 러시아 서부의 유대인 거주 지역으로 특별할 것 없는 가난한 시골 동네였다. 그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염소와 닭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그런 동네였고 유대인들이 모여사는 마을이라 유대교 행사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유대교 행사들에는 항상 바이올린을 연주자는 사람이 있었고 샤갈은 어릴 때부터 신앙심이 좋았다고 한다. 가난했지만 1906년 부모님의 허락으로 자신이 좋아하던 미술교육을 받으며 자라게 된다. 1910년 러시아 출신 유태인 변호사 '막심리버'의 후원으로 그가 꿈꾸던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간다. 이 시기에 야수주의, 입체주의, 오르피즘 등 새로운 작업방식에 영향을 받아 환상적이고 공상적인 요소가 지배적인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만들어냈다. 샤갈의 가장 큰 특징은 그의 원색적인 색채의 조합으로 본인 스스로도 색채화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학당시 본인의 실력도 늘고 그림도 유명해졌지만 향수병과 함께 고향에 있는 연인 '벨라'를 그리워한다. 1915년 고향으로 돌아가 비테프스크에서 벨라 로젠펠트(Bella Rosenfeld)와 결혼했다. 벨라는 부유한 보석 세공사의 딸로 집안의 반대를 이기고 결혼해 1916년 두 사람 사이에 딸 이다를 낳는다. 비테프스크에서의 행복한 신혼생활 중 러시아 혁명과 사회주의 리얼리즘과의 마찰 그리고 유대인에 대한 차별로 모스크바로 그리고 다시 프랑스로 거처를 옮긴다. 1923년 프랑스로 이주하고 1926년 뉴욕에서 첫 전시회를 연다. 이미 유럽에서 유명했던 샤갈은 성공적으로 파리에 정착을 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을 소재로 이때 많은 그림을 그리게 된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유대인인 샤갈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전쟁과 가난의 영향인지 1944년 사랑하던 아내 벨라가 갑자기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하게 된다. 실의에 빠진 샤갈은 약 1년간 작품활동을 이어가지 못한다. 샤갈의 딸 이다의 위로와 응원에 힘입어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다의 소개로 버지니아 해거드(Virginia Haggard)라는 여인과 7년간 연애하고 1952년 발렌티나 바바 브로드스키(Valentina Vava Brodsky)를 만나 결혼식을 올렸다. 샤갈은 1947년 프랑스로 돌아와 생 폴 드 방스에서 살았고, 1985년 97세의 나이로 그곳에서 사망했다. 장수한 화가로도 유명하고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는 등 생존화가로 루브르박물관에 작품이 걸리는 영광을 누리기도 한 작가이다.

 

 

작품설명

작가소개를 추려서 적는다고 적었지만 그의 일생은 샤갈이라는 예술가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야수주의, 입체주의, 오르피즘, 초현실주의, 추상미술 등 사람들이 말이 많았지만 작가는 사상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규정짓는 것을 거부하였을 뿐 아니라 "내 작품은 꿈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실제의 추억들일뿐이다."라고 하였다. 실제로 작품의 기법들은 여러 시도로 바뀌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바뀌지 않은 것들은 자유로운 구성과 추억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들에 나오는 염소(고향의 풍경, 자신), 닭(자신), 촛대(유대교, 신앙), 교회(유대교, 고향마을), 바이올린(고향, 유대교 행사), 시골풍경(고향 비테프스크), 에펠탑(파리), 신부(사랑, 벨라) 천사(딸이다, 유대교) 뒤집어짐(자유로움, 감정)등은 같은 의미로 반복적인 등장을 보여준다. 우리는 작가의 입장이 되어 이 시기에 어떤 감정이었는지 유추하며 그림을 감상하면 되는 것이다. 샤갈의 그림들은 관객의 추리하는 재미가 있으며 화려한 색채에서 그 감정들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날짜와 그림 속 소재를 이해한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며, 추상적인 현대미술로 본다면 굉장히 직설적인 그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설명을 각각 하지 않는 이유는 제목과 연도로 위의 소개에서 찾아보는 재미를 남겨두기 위해서 이다.

1911년 나의마을
1912년 바이올린 켜는 사람
1913년 일곱손가락의 자화상
1913년 에펠탑의 신부
1915년 생일
1918년 산책
1938년 십자가에 못 박힌 흰 그리스도
1964년 곡예사

개인적 생각

내가 생각하는 '작가의 삶'을 생각할 때 샤갈은 나의 이상형이다. 유튜브에서 이런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젊은 리치라고 할 수 있는 수집가에게 미술품에 있어서 작가의 존재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작가가 도덕적 문제점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도 그 작가의 작품을 수집할 것인가?" 이에 그의 대답은 " 내가 수집하는 이 작품들의 작가도 나는 사랑한다. 한두 번의 기다림이 있겠지만 그가 바뀌지 않는다면 나는 손해를 보더라도 그의 작품을 모두 팔고 다른 작품을 찾을 것이다." 어찌 보면 주식에서 손절하는 개념과도 비슷하다. 주식을 살 때 그 기업의 잠재가치를 보고 사듯이 작품활동에 있어서 그 주체인 작가가 어떤 인물인가도 중요하다. 나는 작가의 삶도 작품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수집가는 작가의 스토리도 수집하는 것이다. 마르크 샤갈은 97년이라는 그 긴 일생의 끝을 보는 그날까지 '사랑'이라는 주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는 염소와 닭을 사랑하고, 고향과 파리를 사랑하고, 아내와 딸을 사랑하고, 꽃과 거리를 사랑하고, 신과 자연을 사랑하고, 색과 자유로움을 사랑했다. 그리고 관람객을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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